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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챌린지

4일 <병 간호는 나를 지치게 한다>

by 햅삐한 햅삐민 2024. 1. 4.

나는 이타적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다. 공감능력도 높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대상을 돌보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의 행복과 기쁨이 곧 나의 행복과 기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대상의 아픈 몸을 간호하는 건 좀 다른 이야기 같다. 결론적으로 병간호는 나를 지치게 한다.

 

12년을 키운 강아지는 1년간 뇌출혈로 투병 생활을 하다가 내 품에서 잠들었다. 그렇게 무지개 다리를 건넌 2.5kg의 작은 치와와는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 내 가슴속에 멍울로 남아버렸다. 이는 트라우마와 같아서, 나는 평생 물고기 한 마리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

 

상실은 어찌되었든 큰 고통이다. 떠난 자보다 남은 자에게 그 고통은 더없이 크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목숨이 달린 일이 아니어도 아픈 이를 간호하는 건 어쨌든 지친다. 예를 들어 독감에 걸린 사람을 신경 써서 간호하는 것 말이다. 기침 소리에 함께 잠을 설친다. 밥은 먹어야지, 약 챙겨 먹어야지, 오늘은 기침이 좀 어때? 와 같은 이야기가 한 달이 넘어 일상이 되어버리면 어느 순간 진절머리 나기 마련이다.

 

내가 못되먹은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어쨌든 나도 나를 보호하고 싶으니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도 사람인데 지치지.라는 변명 말이다.

 

걱정으로 인해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본다. 여러 시도도 함께 한다. 나아지는 기미가 없으니 무력함을 느낀다. 왜 병원을 다녀도 호전되지 않는지 그로 인한 또 걱정이 밀려온다. 계속해서 타인을 돌본다는 건 그런 거다. 어느 순간이 되면 내 자유가 박탈당하는 상실감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플 때 정작 간호받아본 기억이 없다. 내가 아프다는 걸 인식도 못하던 아주 어린 시절, 열이 끓는 채 아무렇게나 누워있다가 퇴근한 엄마가 설거지하는 소리에 얼핏 깼다. 그 뒷모습에 말해 본다. 엄마 물 좀 줘.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신경질적인 한마디다. 넌 손이 없니 발이 없니.

 

어쨌든 물은 얻어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내가 아팠다는 걸 엄마는 아직도 모를 것이다.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려니 엄마도 여간 힘든 일상이 아니었을 거다. 어른이 된 지금,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 든 나는 어떤 식으로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려 해본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나는 신경도 안 쓴다. 아니, 신경 쓰는 것 같다. 아직도 그런 기억들은 가슴 아프다. 나는 엄마와 친하지 않다.

 

어쨌든 살면서 아플 때마다 나는 혼자 버텼다. 병원에 갈 힘도 없어서 정신없이 3일 동안 잠만 잤던 적도 있다. 침대 옆에 덩그라니 놓인 생수병만 들이키며 그렇게 버텼다. 그래도 뭐, 깔끔하게 나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건강한 것 같다. 그때 물만 마시며 아팠던 덕에 살도 빠지고 피부도 좋아진 기억이 있다. 이렇게 나쁜 일은 좋은 일이 되기도 한다.

 

감기는 비타민C 메가도스를 하고부터는 거의 걸린 적이 없는 것 같다. 올해는 옆에서 독감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옮지도 않았다. 여간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병 간호는 나를 지치게 한다. 그러니 아픈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내 곁의 사람들 모두가 건강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나는 내가 아픈 것도, 남이 아픈 것도 딱 질색인 인간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건강은 역시 최고다.